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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상처 주는 방법을 이미 알고 있다

  • 관리자
  • 2020-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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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금없는 이야기지만, 프리미어리그 팀인 아스널을 좋아한다. 경기도 꽤 챙겨보는 편이다. 아스널은 마냥 잘하는 팀은 아니다. 자주 진다. 올해도 승리한 날보다 비기거나 진 날이 더 많다.

 

경기를 볼 때면 욕도 가끔 한다. 비속어를 섞어가면서, 누가 못한다, 전술이 구리다, 특정 선수는 매각해야 한다며 감독에 빙의한다. 어디에 글을 남기는 것은 아니다. 경기 실시간 중계 채팅창엔 가끔 선수들을 비아냥거린 적이 있다. 생각해보니 가끔이란 표현보단 빈도가 조금 더 높다는 것을 인정해야겠다. 그러다 가끔 퍼뜩 느낀다. 오락거리로 즐기는 축구 경기 시청에 내가 굉장히 몰입하고 있다고.

 

몰입은 스포츠에서 좋은 것이다. 극단적인 경우는 제외한다. 팬들끼리 패싸움을 하고, 홍염을 터뜨리고, 경기장에 난입하는 것은 정상적인 몰입이라고 볼 수 없다. 팀에 몰입하다 충성도가 생기면 수익이 된다. 집에서 경기를 시청하는 것, 직접 관람하는 것, 유니폼을 사는 것, 그들이 광고하는 제품을 사는 것, 모두 몰입한 팬들이 하는 행동이다.

 

팬과 팬이 감정으로 싸우는 것도 마냥 나쁜 것이 아니다. 어느 정도 당연한 것이다. 특정 팀과 팀이 라이벌 관계가 형성되는 것은 오히려 장려해야 한다. 밖에서 보면 매우 유치해 보이는 팬들 간의 싸움은 코어 팬을 만든다. 코어 팬은 팀에 헌신적이며, 수익성 역시 높다. 코어 팬이 많은 팀은 아무리 세계적인 불황이 닥쳐와도 흑자가 다른 표현으로 전환되지 않는다.

 

최근 스포츠 선수들에 대한 악성 댓글이 이슈가 되고 있다. 유명 야구 선수의 부인은 남편에 대한 악의적인 비방 댓글 및 메시지를 고소하겠다고 얘기했다. 한 IOC 선수위원은 "스포츠 뉴스도 댓글 금지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프로 야구 선수는 물론, e스포츠 선수들도 다수 소속된 리코 스포츠는 악성 댓글에 대한 법적 대응 방침을 밝혔다. 네이버는 7일 오전 '네이버 스포츠뉴스'의 댓글을 잠정 중단하겠다고 공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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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선수에 대한 공격적인 반응은 떼려야 뗄 수 없다. 공을 차거나 던지거나, 컴퓨터 게임으로 경쟁하는 것 등 생산성 없는 행동들에 수익이 나오는 이유는 그런 행동을 즐기는 팬들이 있기 때문이다. 공격적인 반응을 보인다는 것 자체가 팀에 깊이 몰입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필수 불가결한 부분을 선수들이나 관계자들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자신들의 연봉엔 팬들의 공격적인 반응에 대한 감정 노동 역시 포함된다는 것을. DRX의 '데프트' 김혁규는 "최고 대우이기 때문에 잘 못 하면 더 많은 비난을 받을 수 있다. 비난받을 걱정보다 잘하면 되지 않나 싶다. 잘하면 그만큼 칭찬을 받는 게 e스포츠"라고 말했다.

 

중요한건 선이다. 비판과 비난의 경계, 조롱도 어디까지 해학이고 어디부터 악의인지. 우리는 이미 답을 알고 있다. 어떻게 행동하면 상대방이 상처받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일 년에 수백 개씩 쏟아지는 선수들의 인터뷰에선 항상 마침 말로 팬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며, 그 선에 대한 기준을 명확하게 제시한다. 담원 게이밍의 '고스트' 장용준은 "힘들 때 웃으면 '일류'라고 하는데, 아직 가족에 관한 이야기는 감당하기 어렵다. 마냥 응원해주지 않아도 좋다. 못하면 못한다고 하셔도 좋고, 어떤 상스러운 욕도 괜찮다. 그러니 비난의 대상이 내 주변으로 퍼지지 않길 바란다"고 얘기했다.

 

원색적인 비난도 선수들이 일정 부분 감안하고 있는 실정에, 가장 우려되는 것은 정신은 소모된다는 점이다. 자극적인 말들에 정상적인 정신이 갉아 먹히고, 결국엔 정당한 비판도 삐뚤게 보는 것이 걱정된다. 날카롭지만 올바른 말도 선수와 관계자가 불편한 그날이 온다면, 팬과 선수들의 유대감은 하루아침에 모래성이 되어 무너질 것이다.

 

선수들 역시 자신을 향한 빨간 불빛을 정면으로 쳐다봐선 안 된다. 18승 2패의 특급 투수는 2패에 집중하지 않는다. 18승에 집중한다. 특급 투수가 패전한 날에는 당연히 비판과 조롱이 쏟아지겠지만, 결국 시즌이 끝난 후에 결과를 평가할 때엔 2패 투수가 아니라 18승 투수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누군가를 비난하고, 욕하고, 상처 주는 일은 없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스포츠에 포함된 요소라고 당연히 생각돼선 안 된다. 자극적인 일이 무뎌지게 되는 순간, 판 위에 서 있는 그 누구도 버틸 수 없다.

 

원문링크 - https://sports.news.naver.com/news.nhn?oid=502&aid=00000003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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